(2013년 12월, 누에섬 가는 도중)

 

2016년 7월, 나는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힌지 벌써 세번째인데...드디어 망할 놈의 회사를 퇴사할 수 있었다.

 

 

길지 않은 3년. 그 곳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적응이라는 명목 하에 나를 철저히 감추고 지낸 6개월.

리더의 자리에 앉아있는 인간들은 대부분 멍청했다. 아니, 멍청하고 부지런했다.

소싯적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내 눈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한심해 보였다.

중간관리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같은 처지의 고용인들을 괴롭히고

불평하는 고용인들은 우둔한 군중이 되어 인격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입사 1년 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조직에 폭탄을 던졌다.

월급의 문제도, 승진의 문제도, 업무량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인격이 말살당하지 않으며 일하고 싶었을 뿐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폭탄에 중간관리자와 총괄책임자는 당황하기 바빴고

예고없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밤 9시까지 개인면담이란 명목으로 나를 괴롭혔다.

면담은 왜 괴롭힘이 되었을까?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처음 듣는 사람인냥 놀라운 연기를 하느라 얼굴 가죽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결국 아랫놈이 참으라는 회유와 함께 그들은 멍청하고 부지런한 인간들을 품었다.

그 때 나는 너무 지쳤었다. 더이상 싸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회사...언젠가는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머지 않은 날에 또 터트리자고 다짐한걸까. 그 일이 있고 2년 후 내 인내심은 한계에 왔다.

멘탈이 붕괴되는 것으로 모자라서 이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살기 위해 이 곳을 그만둬야지. 안그러면 무슨 일 생기겠다.'

자기합리화가 아닐까 몇 달을 고민한 끝에 나는 감옥같은 그 곳을 빠져나왔다.

 

퇴사하는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패잔병처럼 힘이 없었다.

6개월 동안 복용하던 효과없던 약도 퇴사 일주일만에 끊을 수 있었다.

거짓말 같았다. 내 심신이 건강을 되찾으니 전혀 다른 사람이 거울 속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게 원래 내 모습일지도...

 

무엇이 나를 괴물로 만들었을까.

나를 괴롭히던 작자들을 향한 복수심?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비겁함을 참지 못하는 나 자신?

아직도 모르겠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너무 많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참 좋았다.

하지만 이젠 지겹다. 자유를 갈망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자유를 얻은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더 원론적으로 나는 왜 자유를 갈망했는지 잊어버렸다.

 

그래. 이쯤되니 인정하자.

나는 그 작자들을 향한 복수심을 자유라는 그럴듯한 판타지로 포장하여 나를 속였다.

괴롭혔던 작자들에게 바라던 복수에 성공했으나 후에 밀려오는 자괴감은 견딜 수 없었다.

그 작자들을 욕하던 나는 그들보다 더 괴물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나를 괴물로 만드는가?

글쎄..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Posted by 철없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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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도나그네 2016.09.09 14: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너무도 힘든 직장생활을 하셨군요..
    자기가 일하는 직장은 보수도 중요하지만 마음편한쪽이
    훨씬 중요한것 같더군요..
    그래도 그동안 용케도 잘 참아 오셨군요..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것 같습니다..
    너무 상심 마시고 힘찬 출발 새롭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파이팅!
    입니다..

  2. écrivain inconnu 2016.09.10 0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회사 생활이 어떠하셨을지 모두는 이해하지 못해도 선합니다. 저 또한 비슷했기 때문에요. 그나마 저는 동료들과는 잘 지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일 순 있겠네요.

    숨막히는 전쟁터 아니 지옥같은 회사생활 견디다 보면 몸에 어느 한군데씩 말썽이 일어나곤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피빨린 것 같은.. 돈과 건강을 바꾼 것 같은 묘한 기분도 들고요.

    어쨌든 그런 상사들을 벗어나서 한결 나아지셔서 다행입니다. 한숨 돌리시고 진짜 나를 위한 일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항상 화이팅입니다.

    • 철없는남자 2016.09.14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한민국의 대부분 직장은 충성을 강요하는 이상하는 기업문화가 있죠.
      개인이 기업과 근로계약을 하고 정당하게 노동력을 지불하는 행위를, 말도 안되는 애사심으로 포장하는 작태는 참으로 한심합니다.
      요즘 잘 쉬고 계시죠? 나라가 엎어지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기업문화는 바뀌지 않을겁니다. 힘 없는 우리들은 건강을 지키며 싸우거나 그들의 노예가 되겠죠.

      건강한 모습으로 블로그 활동하시길 응원합니다...:D

  3. 伏久者 2016.09.19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인들의 푸념섞인 한숨에는 "내가 더러워서 이넘의 직장을 그만두던가해야지... 휘유 ==3" 라는 자조적 한숨이 섞이지요.
    요즘처럼 실업자가 만연하는 사회에서도 대단한 용기를 내셨습니다.

    저는 직장에 임원으로 근무할때는 나름 합리적이고,유능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떠나고보니 이제는 나에게 향하는 원망의 눈초리가 느껴지더군요. 용기를 내시고 새 출발을 하십시요!!!!!!!!!!

    • 철없는남자 2016.09.19 2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임원으로 근무하셨다니 어려움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큰 범주에서는 오너를 제외한 모두가 월급쟁이라 좋은 평판이 있으면 나쁜 평판도 있기 마련이죠.

      사실 대단한 용기라기 보다는....순간의 복수심에 불타올라서 저지른 것이 맞죠.
      저지르고 보니 저도 결국은 똑같이 한심한 인간이더군요. 교훈을 얻었습니다.

  4. Naturis 2016.09.19 2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직장을 그만두셨군요..
    이유는 여럿이지만 저도 많이 해본거라 잘했다 못했다고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우선 건강을 고려하신 건 맞다고 봅니다.. 보통은 그런경우에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거든요.. 최소한 심신을 갉아먹는 곳은 피하는게 맞다고 보여지고요..
    어쩌면 퇴사의 이유를 찾기위해 적당한 자기합리화(또는 변명, 어쩌면 건강에 대해서도)를 시도했을 수도 있으나, 마음이 떠난 곳에 오래 있기보다는 심신건강을 추수리면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일단은 다 잊고 얼마간이라도 쉬시는게 좋지않을까 싶습니다. (현직장이든 미래의 직장이든) 후회와 두려움으로 다시 심신만 갉아먹을걸요~ 일단 쉬세요~

    • 철없는남자 2016.09.19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보다 사회경험 선배이니 잘 아시겠네요..ㅎㅎ
      자기합리화가 아닐까 6개월 동안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결론은 아니였습니다.

      한 때는 직장에서 마주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이 있었으나, 실업자 신분이 되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마음도 많이 회복했습니다.
      근데 뭐 어쩌겠습니까. 노동을 통해서 먹고 살아야하는 생활인인데...ㅎㅎ